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의 해, print79.kr 에서 유관순열사를 그려보았습니다.
3·1절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파고다 공원에서 33인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뒤, 전국단위로 만세운동은 퍼져나갔다
3월1일 부터 약 2달동안 지방까지 흘러가 1540회 집회, 202만명참여, 4만명기소, 7,500명의 사망자 발생한
엄청난 시기였다고한다.[KBS탐사보도참조]
약 100년동안 누나로 축소되었고, 3급유공자로 하향되었던 유관순열사의 삶을 살펴보자.
유관순은 1919년도에 이화학당을 다녔다는 것은 높은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었음을 알 수있다.
독립선언서를 접한 유관순은 재학중이던 이화학당에서 이미 고초를 당하고, 친구들과
학교담을 넘어 대도시에서 집회를 끝낸뒤 독립선언서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 이유로 부모님 모두 사망하며. 형제들까지 일가족 모두가 죽게되었고, 그의 오빠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관순열사는 진천, 충주, 교회, 농촌등을 다니며 독립선언서를 홍보하고, 설득하고, 읽었다고 한다.
일제에 체포된 유관순은 끔찍한 고문을 당하였는데, 고문의 가지수가 100가지나 될 정도로 고문기술자에 의해 당했다고 한다.
유리가루를 호수로 입에 넣어서 집어 넣어 유리가루가 창자를 뚫고 나와 온몸에 피가나며
귀를 자르고, 코를 잘랐다고 한다.
또한 머리가죽까지 벗겼다고 한다.
물이 뿜어나오는 호수를 입에 넣어 온몸에서 물이 7군데로 튀어나오며 죽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믿기지않는 일제의 만행을 당하며 숨이 끊어졌다.
이러한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서대문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할때 겨우 17세였다고 한다..